화창한 5월의 시카고, 현지인이 알려주는 건축물 보트 투어 명당과 리버워크 맛집

창밖을 가만히 내다보니 눈이 부실 정도로 화창하고 선명한 햇살이 오로라(Aurora)의 조용한 동네를 가득 비추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집 안의 홈 오피스로 향하며 이른바 '가짜 출퇴근(Fake Commute)'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는 저지만, 오늘같이 햇살이 밖으로 나오라며 강렬하게 유혹하는 날에는 듀얼 모니터 앞에서 숫자와 코드만 바라보는 것이 왠지 모를 큰 죄악처럼 느껴집니다. 문득 좁은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고 복잡하고 거대한 도심의 에너지를 직접 수혈받아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가벼운 외투를 챙겨 입고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맑고 파란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코끝을 스치는 공기가 제법 쌀쌀하고 날카롭습니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의 일기예보 앱을 열어 레이더 영상을 확인해 보니, 낮 동안은 쾌청하겠지만 저녁 무렵부터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제법 굵은 빗방울이 쏟아질 예정이라는 경고가 떠 있습니다.

20년 가까운 긴 시간을 미국 중서부에서 쉼 없이 달려온 IT 엔지니어로, 또 현재는 외부의 강제가 없는 자유로운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고 있지만, 매년 겪으면서도 이맘때 일리노이 특유의 변덕스럽고 얄미운 봄 날씨는 도무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루 안에 사계절이 다 들어있다는 우스갯소리가 결코 과장이 아니죠. 하지만 데이터와 흐름을 분석하는 오랜 직업병 때문일까요? 저는 역설적으로 이런 예측 불가능한 날씨야말로 다운타운 시카고의 역동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매력을 가장 쾌적하게, 그리고 밀도 있게 즐길 수 있는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의 불쾌지수도 없고, 살을 에는 듯한 한겨울의 살인적인 칼바람도 피할 수 있는 지금. 따뜻한 낮의 햇살은 온전히 즐기고, 차가운 저녁 비는 교묘하게 피하는 치밀한 반나절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다운타운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화창한 5월 시카고 리버워크의 피제리아 포르토피노 테라스에서 즐기는 피자와 스프리츠, 그리고 그 뒤로 지나가는 건축물 보트 투어 풍경

건축과 데이터가 교차하는 90분, 시카고 강 위에서의 깨달음

시카고라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가 뿜어내는 5월의 에너지를 가장 입체적이고 다각도로 이해하기 위해, 제가 매년 봄이 오면 지인들에게 빼놓지 않고 추천하는 필수 코스는 바로 시카고 강을 가로지르는 '건축물 보트 투어(Architecture Boat Tour)'입니다. 이 투어를 제대로, 그리고 완벽하게 즐기기 위한 저만의 확고한 철칙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침 일찍 서두르더라도 무조건 오전 10시 첫 배에 탑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머리 위로 높이 떠올라 강한 직사광선이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 짙고 억센 그림자를 드리우기 전, 동쪽 하늘에서 비스듬히 떨어지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야말로 도시 마천루의 질감을 가장 아름답고 선명하게 살려주기 때문입니다. 이 황금 같은 시간대에는 굳이 무겁고 값비싼 DSLR 카메라가 없어도, 주머니 속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만 가볍게 누르면 곧바로 하이엔드급 화보가 탄생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2층 야외 오픈 데크의 가장 시야가 탁 트인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엔진의 낮은 진동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이윽고 유람선이 묵직하게 강물을 가르며 뱃고동을 울리고 출발하면, 이 도시가 품고 있는 거대한 공학적 위용과 치열했던 역사적인 서사가 한 편의 파노라마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집니다. 100년도 더 된 섬세하고 아름다운 네오고딕 양식의 리글리 빌딩(Wrigley Building)부터, 옥수수 모양을 빼닮아 이제는 시카고의 흔들리지 않는 상징이 된 마리나 시티(Marina City), 그리고 최근 스카이라인의 새로운 지배자로 우뚝 솟아올라 우아한 곡선미를 뽐내는 세인트 레지스(St. Regis)의 기하학적인 유리 외벽까지. 수십 년간 거대한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고 복잡한 서버 아키텍처를 설계해 온 IT 전문가의 깐깐한 눈으로 바라보아도, 이 거대한 콘크리트와 굵은 철골, 그리고 차가운 유리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정교한 구조적 조화는 그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과거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물길을 역류시킨 인간의 굳은 의지와 구름 위로 마천루를 쌓아 올린 경이로운 기술력이, 마치 거대한 메인프레임 속 데이터 케이블처럼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연결하고 있다는 압도적인 감동마저 밀려옵니다.

하지만 시각적인 황홀함과 감탄도 잠시, 유람선이 하늘을 찌를 듯 빽빽하게 늘어선 마천루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빌딩 계곡 사이의 짙은 그늘로 깊숙이 진입하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매섭고 날카로운 강바람이 얇은 옷을 뚫고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듭니다. 배에 타기 전 느꼈던 눈부신 햇살과 따뜻한 공기만 믿고 가벼운 반팔 셔츠나 얇은 카디건 하나만 걸친 채 자신만만하게 야외 데크에 올랐던 수많은 관광객들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칼바람에 당황하며 몸을 잔뜩 웅크리고 덜덜 떠는 모습을 투어 내내 흔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감히 장담하건대, 5월의 시카고 강바람은 한여름 풀가동되는 서버실의 맹렬하고 건조한 에어컨 냉기보다 훨씬 더 매섭고 무자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투어에 나설 때면 항상 백팩 안쪽에 가볍게 꺼내어 걸칠 수 있는 방풍 기능이 뛰어난 바람막이 재킷과 자외선을 차단해 줄 짙은 선글라스를 생존 필수품처럼 챙겨 다닙니다. 도슨트의 열정적이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건축 역사 해설을 훌륭한 팟캐스트 삼아, 차가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시카고가 왜 전 세계 건축가들이 동경하는 '현대 건축의 성지'라 불리는지 그 분명한 해답을 온몸의 감각으로 체감하는 이 90분. 이 시간은 언제 누구와 함께 다시 경험해도 지불한 티켓값이 단 1센트도 아깝지 않은 최고의 지적 유희이자 시각적 호사입니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강변 테라스의 미식, 피제리아 포르토피노

차갑고 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지적인 호기심과 시각적인 즐거움을 한껏 채우고 배에서 내리면, 팽팽하게 긴장했던 몸이 서서히 풀리며 뱃속에서는 따뜻한 음식과 안락한 휴식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원초적인 신호를 보내옵니다. 강 위에서 속수무책으로 겪어야만 했던 혹독한 체온 저하를 완벽하게 보상받고, 시카고의 활기찬 낮의 에너지를 우아하게 이어가기 위해 제가 주저 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곳은 바로 리버워크 강변에 자리 잡은 '피제리아 포르토피노(Pizzeria Portofino)'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그저 허기진 배를 빠르게 채우고 일어서는 흔하고 평범한 피자 프랜차이즈가 결코 아닙니다. 무거운 입구의 문을 열고 테라스로 향하는 통로를 지나는 순간, 마치 긴 비행기를 타고 미국의 중서부를 떠나 이탈리아 지중해 연안의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휴양지에 막 도착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고급스럽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마법 같은 공간입니다.

치밀한 성격 탓에 몇 주 전부터 미리 예약해 둔, 찰랑거리는 강물과 바로 맞닿아 있는 야외 테라스석으로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습니다. 튼튼하고 커다란 파라솔이 등 뒤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강바람을 든든하게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고, 정수리 위로 아무런 방해 없이 온전하게 떨어지는 5월의 따뜻한 봄 햇살이 강 위에서 꽁꽁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을 아주 기분 좋게, 그리고 노곤하게 녹여줍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저는 복잡한 메뉴판을 들여다볼 필요 없이,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이자 화창한 봄날의 색감을 완벽하게 빼닮은 상큼한 오렌지빛의 포르토피노 스프리츠(Portofino Spritz) 한 잔을 주문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화덕에서 방금 구워내어 가장자리가 먹음직스럽고 바삭하게 부풀어 오른 크리스피 페퍼로니 피자,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흙내음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화이트 트러플 피자가 테이블에 놓입니다. 이탈리아식 정통 기법으로 반죽해 얇고 쫄깃한 도우 위에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들이 완벽한 밸런스로 어우러진 피자 한 조각을 크게 베어 물고, 얼음이 가득 담긴 차가운 칵테일로 짭짤해진 입안을 상쾌하게 축이는 순간. 그때 밀려오는 압도적인 미식의 만족감은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로도 묘사하기 부족할 만큼 황홀합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빌딩 숲으로 빈틈없이 둘러싸인 시카고 도심 한복판에서, 지중해의 여유롭고 낭만적인 미식 경험을 이토록 완벽하고 세련되게 재현해 내는 퀄리티 높은 식사 경험은 결코 흔치 않습니다.

가끔은 평일 낮 시간에 혼자 이곳을 찾아, 출퇴근 시간이나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1인 기업가이자 디지털 노마드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호사를 십분 살리기도 합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리버워크 풍경을 배경 화면 삼아 테이블 한쪽에 가볍게 노트북을 펼쳐두고, 맛있는 식사를 천천히 즐기며 클라이언트의 급한 이메일을 처리하거나 새벽에 세팅해 둔 백엔드 데이터 자동화 스크립트가 오류 없이 매끄럽게 잘 돌아가고 있는지 여유롭게 모니터링을 합니다. 제 눈앞으로 유유히 강을 떠다니는 새하얀 프라이빗 요트와 방금 전 제가 타고 내렸던 커다란 건축물 투어 유람선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즐기는 이 호사스러운 런치는, 창문 하나 없는 답답하고 꽉 막힌 실내 오피스의 파티션 안에서는 평생을 일해도 절대 느낄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이자 달콤한 정신적 해방 그 자체입니다.

비가 오기 전의 치밀한 퇴각, 그리고 완벽했던 하루의 완성

강변 테라스에서의 여유롭고 완벽했던 식사를 마치고, 쌉싸름하고 향긋한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오늘의 성공적이었던 반나절 일정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즈음. 문득 고개를 들어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아침 내내 맑았던 하늘부터 서서히 짙고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아침의 쾌청함과는 다르게 한층 더 무겁고 습해지는 것이 피부로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외출 전 확인했던 일기예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었음을 증명하듯, 시카고의 하늘은 본격적으로 차가운 저녁 비를 쏟아낼 준비를 묵묵히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도심의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퇴근 시간대 트래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하기 전, 그리고 수분을 가득 머금고 무거워진 하늘에서 기어코 첫 빗방울이 떨어져 겉옷의 어깨를 적시기 전에 미련 없이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복잡해지는 거리를 뒤로하고 곧바로 우버를 호출하거나, 시내를 가로질러 유니언 역(Union Station)으로 발걸음을 옮겨 오로라 집으로 향하는 외곽순환 통근열차에 안전하게 몸을 싣는 것. 이것이 바로 기분 변화가 심한 사람처럼 얄미운 5월의 시카고를 그 누구보다 영리하고 완벽하게 정복하는, 이 지역에 오래 산 현지인 아재만의 치밀하고 성공적인 퇴각 전략입니다. 비록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을 바꾸는 변덕스러운 날씨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강바람 속에서 온몸으로 마주한 마천루의 압도적인 웅장함과, 잠시나마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강변 테라스에서의 완벽했던 이탈리안 피자 한 조각이 주는 이 강렬하고 짜릿한 대비. 이것이야말로 매년 이맘때 시카고 여행에서만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과도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진짜 마력일 것입니다.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쌀쌀하고 눈부신 5월의 시카고, 100년 된 다이너의 아침과 버킹엄 분수

유난히 화창한 시카고의 봄, 리글리 필드와 낮맥 한 잔의 여유

짙은 안개 속 시카고 웨스트 루프 산책, 그리고 완벽한 햄버거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