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을 마지막에 두는 이유, 올드 타운 산책 순서

올드 타운에 갈 때 아이들이 기대하는 건 역사 지구 산책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입니다. 붉은 벽돌집이 늘어선 골목을 걷다가 제니스 스플렌디드 아이스크림(Jeni's Splendid Ice Creams) 간판이 보이는 순간부터 아이들 걸음이 빨라집니다. 저희 가족이 이 동네를 자주 찾는 진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름 주말에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게 됩니다. 이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시카고 올드타운 역사 지구의 빅토리아 양식 붉은 벽돌집과 나무가 우거진 인도

아이스크림 줄이 생각보다 깁니다

제니스는 매장이 작습니다. 여름 주말 오후, 특히 저녁 무렵에는 대기줄이 가게 밖까지 나옵니다. 주문 자체가 오래 걸리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플레이버 종류가 많고 시식을 권하는 곳이라, 앞 손님이 서너 가지를 맛보고 고민하는 동안 줄이 멈춰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 때 이게 은근히 힘듭니다. 덥고, 지루하고, 눈앞에 아이스크림이 보이는데 못 먹는 상태로 십몇 분을 서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몇 번 겪고 나서 순서를 바꿨습니다. 동네를 먼저 걷고 아이스크림을 마지막에 두는 식입니다. 그러면 산책이 아이스크림을 향한 대기 시간이 되어서 아이들도 견딥니다.

시간대를 옮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른 오후는 저녁보다 확실히 한산합니다. 평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줄이 길다고 다른 데로 가버릴 만한 대체재가 근처에 마땅치 않기 때문에, 시간을 조절하는 쪽이 현실적입니다.

그래도 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갑니다

줄을 서면서도 계속 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니스는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시작한 브랜드로, 일반적인 아이스크림 가게와 플레이버 구성이 다릅니다. 바닐라와 초콜릿 옆에 염소젖 치즈와 체리, 브라운 버터 아몬드 프랄린 같은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시식을 눈치 보지 않고 시켜준다는 점도 큽니다. 아이들이 서너 개를 맛보고 결국 처음 고른 걸 고르더라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습니다. 앞서 줄이 길다고 적은 이유가 사실 여기에 있으니, 이건 단점과 장점이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셈입니다.

아이스크림 전에 걷는 동네

올드 타운은 시카고에서 대화재를 견디고 살아남은 건물들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구역입니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는 도심 대부분을 태웠는데, 이 일대의 목조·벽돌 주택 일부가 화를 면하면서 19세기 후반의 거리 형태가 그대로 남았습니다.

중심은 올드 타운 트라이앵글(Old Town Triangle)이라 불리는 삼각형 구역입니다. 좁은 골목에 빅토리아 양식 주택들이 붙어 서 있고, 집집마다 앞마당 화단이 다릅니다. 큰 볼거리가 있는 동네가 아니라 그냥 걷는 동네에 가깝습니다. 관광 명소를 찾아 두리번거리기보다, 남의 집 창틀과 문 색깔을 구경하며 천천히 지나가는 쪽이 이 동네에 맞습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노스 애비뉴와 웰스 스트리트가 만나는 번화한 구간이 나옵니다. 조용한 주택가에서 갑자기 상점가로 바뀌는 이 대비가 짧은 거리 안에서 일어나서, 산책 동선으로는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동선을 짧게 잡는 게 좋습니다. 삼각지구 한 바퀴는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고, 그 이상 끌면 아이들 인내심이 먼저 바닥납니다.

대화재를 견딘 건물, 세인트 마이클 교회

산책 중에 한 곳만 목적지를 정한다면 세인트 마이클 교회(St. Michael's Church)를 권합니다. 1869년에 완공된 독일계 가톨릭 교회로, 2년 뒤 대화재 때 내부가 전소했지만 벽체가 남아 그 위에 다시 지어 올렸습니다. 시카고 대화재의 흔적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건물입니다.

이 동네가 독일계 이민자 정착지였다는 사실도 여기서 드러납니다. 19세기 중반 올드 타운 일대에는 독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여 살았고, 교회가 그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지금 걷는 좁은 골목과 붙어 있는 주택 구조도 그 시절 노동자 주거지의 형태가 남은 것입니다. 예쁜 동네라고만 생각했다가 내력을 알고 다시 걸으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라집니다.

6월에 가면 아트 페어가 열립니다

매년 6월 이 동네에서 올드 타운 아트 페어(Old Town Art Fair)가 열립니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행사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아트 페어 중 하나로 꼽힙니다. 평소 조용한 주택가 골목이 이틀 동안 전시장으로 바뀌고, 전국에서 온 작가들이 부스를 폅니다.

이때는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평소의 한적한 산책은 불가능하고, 골목마다 사람이 들어찹니다. 아트 페어를 보러 가는 것과 조용한 골목을 걸으러 가는 것은 서로 다른 계획이라, 무엇을 원하는지 정하고 날짜를 고르는 게 좋습니다. 조용한 쪽을 원한다면 6월 그 주말은 피하시면 됩니다.

아이스크림 줄도 이 기간에 가장 깁니다. 앞서 대기줄 이야기를 했는데, 아트 페어 주말은 그 몇 배입니다.

겨울에도 갈 만한 동네입니다

여름 이야기만 했지만, 올드 타운은 사실 사계절 다 나쁘지 않습니다. 눈 내린 골목에 조용히 쌓인 눈과 붉은 벽돌의 대비도 꽤 볼 만하고, 겨울에는 아트 페어도 없고 아이스크림 줄도 짧아 오히려 산책만 즐기기에는 더 편합니다. 다만 제니스를 포함한 몇몇 매장이 겨울철에는 영업시간을 단축하거나 평일 운영을 쉬는 경우가 있어, 특정 가게를 목표로 간다면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오히려 눈 오는 평일 오후에 한 번씩 들러 아무도 없는 골목을 여유 있게 걷는 편을 더 좋아합니다.

여러 번 가보고 정리한 요령

  • 아이스크림을 마지막에 두세요. 먼저 먹이면 산책이 안 됩니다. 순서만 바꿔도 하루가 편해집니다.
  • 저녁보다 이른 오후. 여름 주말 저녁이 대기줄이 가장 깁니다.
  • 산책 동선은 30분. 삼각지구 한 바퀴면 충분하고, 그 이상은 아이들이 버티지 못합니다.
  • 주차는 기대하지 마세요. 주택가 노상 주차는 자리가 거의 없습니다. CTA 브라운·퍼플 라인 세지윅(Sedgwick)역이 도보권입니다.

📍 상세 위치 및 방문 정보

올드 타운 트라이앵글 Chicago, IL 60614 일대 · 상시 개방 · 무료 · 주거 지역이므로 소음 유의
제니스 아이스크림 올드 타운 지점 · 시식 가능 · 여름 주말 저녁 대기 발생 · jenis.com
소요 시간 산책 30분 + 아이스크림 대기 포함 1시간~1시간 30분
교통 CTA 브라운·퍼플 라인 Sedgwick역 도보권 · 노상 주차 자리 거의 없음

올드 타운은 목적지가 뚜렷한 동네가 아닙니다. 사진으로 남길 랜드마크도 없고, 하루를 통째로 쓸 만한 곳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가게 되는 건, 아이들에게 확실한 보상이 하나 있고 어른에게는 30분짜리 조용한 골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줄이 짧은 평일 오후를 노려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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