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짜리 불꽃놀이를 보려고 치른 대가, 네이비 피어

독립기념일 밤, 네이비 피어(Navy Pier)의 불꽃놀이는 30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보통 여름 주중·주말에 열리는 정기 불꽃놀이가 10분 내외인 걸 생각하면 완전히 다른 규모입니다. 중간에 끝났나 싶은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다시 시작됐고, 마지막 몇 분은 소리가 몸에 울릴 정도였습니다. 가족과 함께 갔는데, 다들 한동안 말없이 하늘만 봤습니다.

다만 그 30분을 보기 위해 치른 대가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여름밤 미시간 호수와 시카고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터지는 네이비 피어 불꽃놀이

독립기념일에 가려면 각오해야 할 것

주차와 인파, 이 두 가지입니다.

독립기념일 밤의 네이비 피어는 시카고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부두 자체 주차장은 일찍 차고, 근처 도로도 정체됩니다. 불꽃놀이가 끝난 직후에는 수만 명이 동시에 빠져나가기 때문에,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저희도 공연이 끝나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부두 안에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좋은 자리를 잡으려면 시작 훨씬 전에 도착해 자리를 지켜야 하고, 아이를 데리고 있다면 손을 놓치지 않는 데 신경을 꽤 써야 합니다. 화장실 줄도 깁니다.

다시 계획한다면 대중교통을 쓰겠습니다. 차를 가져가서 얻는 이득이 거의 없는 날입니다. 아니면 아예 독립기념일을 피하고, 여름 시즌 정기 불꽃놀이를 노리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5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매주 수요일 밤 9시와 토요일 밤 10시에 무료로 진행됩니다. 규모는 7월 4일만 못하지만, 사람은 비교가 안 되게 적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처음 가보는 거라면 오히려 이쪽을 권합니다.

불꽃놀이 말고도 하루가 채워집니다

네이비 피어는 밤에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낮에 미리 도착해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불꽃놀이로 이어가는 동선이 실제로 가장 효율이 좋았습니다.

가장 좋았던 곳은 시카고 어린이 박물관(Chicago Children's Museum)이었습니다. 부두 안에 있어서 따로 이동할 필요가 없고, 세 개 층에 만지고 올라타고 물을 쓰는 체험형 전시가 채워져 있습니다. 대상 연령은 대체로 1세부터 10세 사이이고 입장료는 1인 21달러 안팎입니다. 여기 유료입니다. 부두 자체는 입장료가 없어서 다 무료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박물관은 별도입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크리스털 가든스(Crystal Gardens)입니다. 입구 파빌리온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6층 높이의 실내 정원인데, 야자수 80여 그루가 유리 천장 아래 심겨 있습니다. 이곳은 무료입니다. 시카고에서 이 정도 규모의 실내 식물 공간을 돈 한 푼 안 내고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습니다. 한여름 낮에 더위를 피하거나, 갑자기 비가 올 때 피신하기에도 좋습니다.

1층 식당가도 잘 되어 있습니다. 종류가 다양해서 가족 구성원이 각자 원하는 걸 고를 수 있다는 점이 편했습니다. 다만 가격은 시내 평균보다 조금 높은 편이라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관광지 안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예산을 아끼고 싶다면 부두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부두가 원래 무엇이었는지

네이비 피어를 그냥 놀이시설이 모인 관광지로만 알고 갔다가, 나중에 내력을 찾아보고 인상이 바뀌었습니다.

이 부두는 1916년에 문을 열었고, 처음 이름은 뮤니시펄 피어(Municipal Pier)였습니다. 관광지가 아니라 화물선과 여객선이 드나드는 실제 항만 시설이었습니다. 지금 이름에 '네이비'가 붙은 건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해군을 기려 1927년에 개칭했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 훈련 시설로 쓰였습니다. 수만 명의 병력이 이곳을 거쳐 갔고, 항공모함 이착함 훈련까지 여기서 이뤄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일리노이 대학교의 임시 캠퍼스로 사용되면서, 참전 후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이 이 부두 건물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지금의 UIC(University of Illinois Chicago)의 전신입니다.

그 뒤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1990년대에 대대적으로 재개발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100년 사이에 항만, 군사 시설, 대학, 관광지로 네 번 성격이 바뀐 셈입니다. 크리스털 가든스나 식당가를 걸으면서 이 건물이 한때 강의실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같은 공간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불꽃놀이는 부두 밖에서도 보입니다

이건 다녀온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불꽃놀이를 반드시 부두 안에서 볼 필요가 없습니다. 호수 위로 쏘아 올리기 때문에 주변 호숫가 어디서든 보입니다.

실제로 많이 언급되는 자리는 부두 바로 북쪽에 붙어 있는 밀턴 리 올리브 파크(Milton Lee Olive Park)와 오하이오 스트리트 비치 쪽, 그리고 남쪽의 애들러 천문관(Adler Planetarium) 앞 잔디입니다. 애들러 쪽은 불꽃과 시카고 스카이라인을 한 화면에 넣을 수 있어서 사진을 찍는다면 오히려 부두 안보다 낫습니다. 인파와 주차 문제도 부두 안보다 덜합니다.

부두 안에서 보는 것의 장점은 소리와 진동입니다. 가까이 있으니 터지는 소리가 몸으로 전해지고, 그 감각이 영상이나 사진으로는 남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한 것도 그 부분이었습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할지의 문제입니다.

부두 끝의 오프쇼어

부두 동쪽 끝 상층에는 오프쇼어(Offshore)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루프탑 바로 기네스에 등재된 곳으로, 호수 위로 튀어나온 위치라 불꽃놀이를 정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곳은 성격이 다릅니다. 불꽃놀이가 있는 날 저녁은 예약이 빠르게 마감되고, 최소 주문 금액이나 별도 입장 조건이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로는 잘 맞지 않고, 어른들끼리 날을 잡아 가는 쪽에 가깝습니다. 저희는 아래쪽 부두에서 봤는데, 무료로 보는 것과 비교해 값을 치를 만한지는 각자 판단할 부분입니다. 하늘에 터지는 불꽃은 어디서 봐도 같은 하늘에 터집니다.

다녀와 보고 정리한 요령

  • 차는 두고 가세요. 특히 7월 4일은 주차 진입보다 빠져나오는 게 더 오래 걸립니다.
  • 낮부터 오세요. 어린이 박물관과 크리스털 가든스로 낮 시간을 채우면 저녁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 처음이면 수요일이나 토요일에. 정기 불꽃놀이도 무료이고, 인파 부담이 훨씬 적습니다.
  • 무료와 유료를 구분해 두세요. 부두 입장·크리스털 가든스·불꽃놀이는 무료, 어린이 박물관과 센테니얼 휠은 유료입니다.

📍 상세 위치 및 방문 정보

주소 600 E Grand Ave, Chicago, IL 60611
부두 입장료 무료 (개별 시설·놀이기구는 유료)
불꽃놀이 무료 · 5월 말~9월 초 수요일 21:00, 토요일 22:00 / 독립기념일·연말 등 특별 공연 별도
크리스털 가든스 무료 · 6층 높이 실내 정원, 야자수 약 80그루
시카고 어린이 박물관 1인 $21 내외 · 권장 연령 1~10세 · 3개 층 체험형 전시
주차·교통 부두 자체 주차장 있으나 성수기·행사일 조기 마감. CTA 버스 #29, #65, #66, #124 이용 권장
공식 사이트 navypier.org

네이비 피어는 시카고에서 가장 관광지다운 장소이고, 그래서 현지에 오래 산 사람일수록 잘 안 가게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독립기념일 밤에 가족들과 나란히 서서 30분짜리 불꽃놀이를 보고 나니, 관광지라는 이유로 미뤄둘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차를 두고, 수요일 저녁에 가볍게 가볼 생각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