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축제에서 둘이 200달러를 쓴 날, 시카고 블루스 페스티벌
시카고 블루스 페스티벌(Chicago Blues Festival)은 입장료가 없습니다. 시가 주최하는 무료 행사라 그냥 걸어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날 저희 부부가 쓴 돈은 둘이 합쳐 200달러가 넘었습니다. 전부 음식과 음료값이었습니다.
그랜트 파크는 가족과 워낙 자주 가는 곳이라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날은 아이들 없이 아내와 둘이서만 갔습니다.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였고, 그래서 평소보다 지갑을 덜 아꼈던 것 같습니다.
무료 행사에서 1인 100달러가 나가는 구조
이 부분을 먼저 적어두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무료라는 말만 믿고 예산을 안 잡고 가면 저희처럼 됩니다.
축제 기간의 그랜트 파크 일대에는 푸드 벤더가 줄지어 들어섭니다.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이것저것 사 먹다 보면 금액이 빠르게 올라갑니다. 여기에 음료, 특히 술이 들어가면 단가가 또 뜁니다. 야외 행사장 물가는 시내 식당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습니다. 저녁까지 이어지면서 근처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번 더 하면, 1인당 100달러는 어렵지 않게 넘어갑니다.
여기에 주차비까지 얹히면 더 커집니다. 다운타운 주차는 그 자체로 30달러 이상을 각오해야 하는 항목이라, 대중교통을 쓰는 편이 여러모로 낫습니다.
돈을 아끼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먹을 것을 가져가면 됩니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는 사람들 상당수가 그렇게 합니다. 그래도 축제 음식을 아예 안 먹기는 어려우니, 처음부터 예산 상한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 쓰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저희는 아무 계산 없이 갔다가 계산서를 나중에 합쳐보고 놀랐습니다.
돈 이야기를 뺀 나머지는 다 좋았습니다
불평은 위의 한 가지가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블루스는 시카고가 자기 도시의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르입니다. 20세기 중반 남부에서 올라온 흑인 음악가들이 이 도시에서 전기 기타를 들고 만들어낸 것이 시카고 블루스이고, 그 계보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음악을 도시 한복판 공원에서, 그것도 공짜로 듣는다는 게 이 축제의 핵심입니다.
무대는 한 곳이 아닙니다. 메인 무대 외에 작은 스테이지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서, 한자리에 붙어 있기보다 돌아다니며 골라 듣는 방식이 잘 맞습니다. 이름을 아는 연주자보다 처음 듣는 무명 연주자 쪽이 좋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분위기가 특히 좋습니다. 낮 동안의 열기가 가라앉고 호수 쪽에서 바람이 들어오면서, 잔디밭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밀도도 편안해집니다. 아이들 없이 둘이서만 앉아 음악을 듣던 그 시간이 이날 가장 좋았습니다. 자주 가는 공원인데도 처음 와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랜트 파크라는 공간에 대해
이 공원을 자주 가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랜트 파크는 시카고 사람들이 '시카고의 앞마당(Chicago's Front Yard)'이라고 부르는 곳인데, 그 표현이 과장이 아닙니다. 다운타운 동쪽 호숫가를 따라 길게 뻗은 이 부지는 도시가 커지는 내내 건물을 올리지 않고 비워둔 땅입니다.
그렇게 남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9세기에 이 땅을 두고 개발 시도가 반복됐는데, 상인 애런 몽고메리 워드(Aaron Montgomery Ward)가 수십 년에 걸쳐 소송을 걸어 막았습니다. 호숫가는 비워두어야 한다는 원칙을 법정에서 지켜낸 셈이고, 그래서 지금 시카고 다운타운은 마천루 바로 옆에 이만한 잔디밭을 갖고 있습니다. 축제가 열릴 수 있는 이유도 결국 이 공간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공원 안에는 버킹엄 분수(Buckingham Fountain)가 있고, 북쪽으로 이어지는 밀레니엄 파크와 사실상 하나의 녹지대를 이룹니다. 축제를 보러 갔다가 시간이 남으면 이 둘을 걸어서 이동하게 되는데, 그 자체로 산책 코스가 됩니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뮤지엄 캠퍼스까지 연결됩니다.
여름 내내 무료 행사가 있습니다
블루스 페스티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시카고는 여름 동안 이 일대에서 시 주최 무료 행사를 연달아 엽니다. 재즈 페스티벌, 하우스 뮤직 관련 행사, 각종 문화 행사가 6월부터 9월까지 이어집니다.
이걸 알고 나서 저희 가족의 여름 계획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큰맘 먹고 하루를 잡기보다, 일정이 비는 날에 그날 뭐가 열리는지 확인하고 나가는 식입니다. 입장료가 없으니 두 시간만 있다 와도 손해가 아닙니다. 시 공식 사이트에 연간 일정이 공개되니 여름이 시작될 때 한 번 훑어두면 편합니다.
다만 무료 행사일수록 사람이 몰립니다. 유명한 이름이 올라오는 날은 잔디밭 자리 잡기가 어렵고, 늦게 가면 무대가 보이지도 않는 위치에 앉게 됩니다. 자리를 원하면 시작 한두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합니다.
쿠바 샌드위치로 마무리
축제장을 나와 들른 곳은 카페시토(Cafecito)였습니다. 다운타운에 있는 쿠바식 카페로, 대표 메뉴는 쿠바노 샌드위치입니다. 돼지고기와 햄, 스위스 치즈, 피클, 머스터드를 넣고 눌러 구워내는 방식이라 겉은 바삭하고 속은 눌린 채로 뜨겁습니다.
축제장 벤더 음식과 비교하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확실히 낫습니다. 진한 쿠바식 커피를 곁들이면 늦은 오후의 피로가 어느 정도 정리됩니다. 앞서 비용 이야기를 했지만, 굳이 아끼겠다면 축제 안에서 덜 먹고 이런 곳에서 제대로 한 끼를 해결하는 배분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녀와 보고 정리한 것
- 입장은 무료, 예산은 따로. 무료 행사라는 인식 때문에 지갑을 안 챙기고 갔다가 더 씁니다. 1인당 상한을 정해두세요.
- 먹을 것을 가져가면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돗자리와 물, 간식을 챙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 차를 두고 오세요. 다운타운 주차비가 예산에서 가장 아까운 항목입니다.
- 작은 무대를 돌아보세요. 메인 무대에만 앉아 있으면 이 축제의 절반만 보는 셈입니다.
- 해 질 무렵을 노리세요. 한낮 잔디밭은 그늘이 거의 없어 덥습니다.
📍 상세 위치 및 방문 정보
| 그랜트 파크 | 337 E Randolph St, Chicago, IL 60601 · 연중 개방 · 무료 |
| 블루스 페스티벌 | 시카고시 주최 · 전 공연 무료 · 매년 6월 개최 · 복수 무대 운영 · 일정은 매년 변동되므로 시 공식 사이트 확인 |
| 실제 지출 | 성인 2인 기준 약 $200 (전액 음식·음료). 입장료·좌석료는 없음 |
| 카페시토 | 쿠바식 카페 · 쿠바노 샌드위치 · 다운타운 복수 지점 |
| 교통 | CTA 각 노선 및 메트라로 접근 가능 · 주차는 다운타운 유료(하루 $30 이상), 대중교통 권장 |
자주 가는 공원이라도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다른 곳이 된다는 걸 이날 알았습니다. 아이들과 갈 때의 그랜트 파크와 아내와 둘이 앉아 있던 그랜트 파크는 같은 잔디밭이 아니었습니다. 비용 이야기를 길게 썼지만, 다시 가겠느냐고 물으면 갑니다. 다음에는 도시락을 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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