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떼와 종소리가 있는 강변길, 네이퍼빌 리버워크와 네이퍼 세틀먼트

산책로에 들어선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오리 가족과 마주쳤습니다. 어미 오리 뒤로 새끼 대여섯 마리가 일렬로 물살을 가르며 따라가고 있었고, 조금 더 걷자 또 다른 무리가 강기슭 풀숲에 배를 깔고 앉아 졸고 있었습니다. 시카고 도심에서 서쪽으로 차를 몰아 40분 남짓 떨어진 네이퍼빌 리버워크(Naperville Riverwalk)는, 듀페이지 강(DuPage River)을 따라 이어지는 1.75마일 길이의 강변 산책로입니다. 초여름 화창한 날 네 식구가 함께 걸었는데, 그날 하루 동안 마주친 오리 개체 수가 아마 사람 수만큼은 되었을 겁니다.

네이퍼빌 리버워크 듀페이지 강에서 줄지어 헤엄치는 초여름 오리 가족

시카고 근교 여행을 몇 년째 다니다 보면 '유명한 곳'과 '또 가고 싶은 곳'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네이퍼빌 리버워크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압도적인 전망이나 사진 한 장으로 설명되는 랜드마크는 없지만, 주차부터 산책, 식사, 물놀이까지 반나절 동선이 걸어서 전부 해결된다는 점에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나들이에는 대단히 실용적인 목적지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삽을 들고 만든 1.75마일

리버워크의 내력을 알고 걸으면 길의 인상이 조금 달라집니다. 이 산책로는 1981년 네이퍼빌 시 창립 150주년을 기념해 조성되었는데, 시가 예산을 들여 일괄 발주한 사업이 아니라 상당 부분을 주민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벽돌을 깔고 나무를 심어 완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구간마다 노면의 벽돌 무늬와 조경 스타일이 미묘하게 다릅니다. 처음엔 통일감이 없다고 느꼈는데, 사연을 알고 나니 오히려 그 불균질함이 이 길의 성격처럼 보였습니다.

동쪽 프레덴하겐 파크(Fredenhagen Park) 쪽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선이 가장 무난합니다. 초반부는 다운타운 상점가와 맞붙어 있어 사람이 많고 활기가 있는 대신, 서쪽 신트 우즈(Sindt Woods) 구간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고 나무 그늘이 짙어지면서 인적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같은 산책로인데 분위기가 두 갈래로 나뉘는 셈이라, 시끌벅적한 쪽과 조용한 쪽 중 그날 기분에 맞는 구간을 골라 걸을 수 있습니다.

길 중간중간에는 강을 가로지르는 목조 커버드 브리지가 놓여 있습니다. 지붕이 덮인 다리 위에 올라서면 아래로 흐르는 강물과 그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는 오리배가 한 프레임에 들어와, 가족 사진 찍기에는 이만한 자리가 없습니다. 다리 근처의 구형 분수인 댄들라이언 파운틴(Dandelion Fountain) 역시 아이들이 한참을 들여다보는 지점이었습니다.

듀페이지 강을 가로지르는 네이퍼빌 리버워크의 목조 커버드 브리지

정시마다 울리는 72개의 종, 그리고 잔디 언덕

산책 도중 갑자기 머리 위에서 묵직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리의 출처는 강변에 우뚝 선 모저 타워(Moser Tower)였습니다. 높이 약 160피트의 이 탑 안에는 72개의 종으로 구성된 카리용(carillon)이 들어 있는데, 정해진 시각마다 연주가 울려 퍼집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녹음이 아니라 실제 금속 종이 부딪히는 소리라, 가까이 있으면 소리가 몸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 탑 바로 앞은 로터리 힐(Rotary Hill)이라 불리는 완만한 잔디 언덕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날 가장 좋았던 시간은 여기였습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종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이 언덕을 뛰어 내려가는 걸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정작 집에 돌아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이 그 30분이었습니다. 늦봄부터 가을 사이에는 소정의 요금을 내고 탑 상부까지 올라가 볼 수도 있으니, 체력이 남는다면 시도해 볼 만합니다.

네이퍼빌 리버워크 로터리 힐 잔디밭에서 바라본 72종 카리용 모저 타워

오리배와 센테니얼 비치, 그리고 솔직한 아쉬움

리버워크 서쪽 끝 무렵에는 오리배와 카약, 패들보드를 빌릴 수 있는 패들보트 쿼리(Paddleboat Quarry)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기대했던 코스라 당연히 탔고, 물 위에서 바라보는 강변 풍경은 걸을 때와 확실히 달랐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솔직하게 적어두고 싶은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가기 전에 알고 갔으면 좋았을 점

오리배 대여소 직원들의 응대가 상당히 사무적이고 무뚝뚝했습니다. 어떤 배를 골라야 하는지, 아이를 태워도 되는지 물어보는 과정에서 설명이 짧고 퉁명스러워 기분이 조금 상했습니다. 시설이나 배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하루 종일 기분 좋게 걷다가 이 대목에서 온도가 한 번 떨어졌습니다. 미리 웹사이트에서 요금과 정원 규정을 확인해 두고 가면 현장에서 질문을 주고받을 일이 줄어듭니다.

바로 옆에는 채석장을 개조해 만든 야외 수영장 센테니얼 비치(Centennial Beach)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공 풀장이 아니라 지하수가 차오른 옛 채석장 웅덩이를 그대로 활용한 곳이라, 얕은 모래사장 구간에서 시작해 안쪽으로 갈수록 수심이 깊어지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5월 무렵부터 노동절(Labor Day) 연휴까지만 운영하므로, 물놀이를 목적에 넣었다면 시즌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입장료는 네이퍼빌 주민과 비주민 요금이 다르게 책정되어 있으니 공식 사이트에서 미리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산책로 옆의 야외 역사 박물관, 네이퍼 세틀먼트

리버워크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네이퍼 세틀먼트(Naper Settlement)가 있습니다. 13에이커 부지에 19세기 개척기 건물들을 옮겨다 놓고 마을 형태로 복원한 야외 역사 박물관으로, 대장간과 학교, 교회, 농가가 실제 크기로 서 있습니다.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 리버워크 산책과 하루 일정으로 묶기 좋습니다.

다만 방문 계획을 세울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여름 시즌(5~10월) 기준으로 화요일부터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만 문을 열고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마감이 이른 편이라 리버워크를 실컷 걷고 나서 들르려 하면 시간이 빠듯할 수 있으니, 두 곳을 같은 날 볼 계획이라면 박물관을 먼저 보고 산책을 나중에 하는 순서를 권합니다. 요금은 성인 12달러, 62세 이상 10달러, 4~12세 8달러 수준이며 네이퍼빌 주민은 증빙 시 무료입니다.

주차 걱정이 없다는 것의 가치

시카고 도심으로 나들이를 나갈 때마다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주차입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네이퍼빌 다운타운은 체감이 확실히 다릅니다. 주차 타워가 세 곳 있고 그 외 야외 주차장도 넉넉한 데다, 전부 무료입니다. 실제로 이날 자리를 찾느라 헤맨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 뮤니시펄 센터 데크 (400 S. Eagle St.) — 모저 타워와 로터리 힐 잔디밭에 가장 가깝습니다.
  • 워터 스트리트 주차장 (120 Water St.) — 다운타운 식당가 접근에 유리합니다.
  • 센트럴 주차장 (75 E. Chicago Ave.) — 프레덴하겐 파크 쪽 산책 시작점에 가깝습니다.

비용은 참고삼아 적어두면, 네 식구 기준으로 식사와 오리배 대여, 입장료를 모두 합쳐 300달러 안팎을 썼습니다. 산책로 자체는 무료이고 주차도 무료이므로, 지출의 대부분은 다운타운에서의 식사와 유료 액티비티에서 나옵니다. 도시락을 싸 가서 로터리 힐 잔디밭에서 해결한다면 이 금액은 절반 이하로 줄어듭니다.

📍 상세 위치 및 방문 정보

항목 네이퍼빌 리버워크 네이퍼 세틀먼트
주소 912 S. West St, Naperville, IL 60540 523 S. Webster St, Naperville, IL 60540
운영시간 연중 개방 (일출~일몰 권장) 여름 시즌 화~토 10:00–16:00 / 일 13:00–16:00 / 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오리배·카약 대여 별도) 성인 $12 / 62세 이상 $10 / 4~12세 $8 / 네이퍼빌 주민 무료
주차 다운타운 주차 타워 3곳 및 야외 주차장 전부 무료 Porter Ave & Webster St 남서쪽 전용 무료 주차장
주요 스팟 커버드 브리지, 댄들라이언 분수, 모저 타워, 로터리 힐, 센테니얼 비치, 신트 우즈 19세기 복원 마을, 대장간, 개척기 학교와 농가
공식 사이트 napervilleparks.org napersettlement.org

네이퍼빌 리버워크는 여행지라기보다 잘 만들어진 동네 앞마당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하루를 통째로 비워 각 잡고 다녀올 곳은 아니고, 오후 반나절이 비었을 때 큰 계획 없이 차를 몰고 나가 오리를 구경하고 종소리를 듣다 오기에 알맞습니다. 다음번에는 오리배는 건너뛰고 도시락만 챙겨서 로터리 힐 잔디밭에 자리를 잡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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