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점수가 낮은 게 아니라 아예 없는 상태입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개념이 신용 점수입니다. 한국에서 빚 없이 성실하게 살았다는 사실이 여기서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점수가 낮은 것이 아니라 점수 자체가 없는 상태입니다.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이 상태를 부르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기록이 없으니 판단할 근거가 없고, 그래서 대출이 거절되거나 높은 이자율이 제시됩니다.

이 글은 그 기록을 처음부터 만들어 가는 방법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정착 첫 달에 시작하는 것과 일 년 뒤에 시작하는 것의 차이가 큽니다.

미국 정착 초기에 처음 발급받는 담보형 신용카드

왜 한국의 신용 기록이 넘어오지 않을까

신용 정보는 각 나라의 신용평가기관이 관리하고, 이 기관들 사이에 국경을 넘는 정보 공유 체계가 없습니다. 한국의 금융 거래 기록은 미국 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국에는 세 곳의 주요 신용평가기관이 있고, 금융기관들이 여기에 개인의 거래 기록을 보고합니다. 대출을 얼마나 갚았는지, 연체가 있었는지, 카드를 얼마나 쓰는지가 쌓여 점수가 산출됩니다. 갓 도착한 사람은 이 세 곳 모두에 파일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 해야 할 일은 점수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방향이 다릅니다.

담보형 신용카드가 가장 확실한 출발점입니다

신용 기록이 없는 사람에게 일반 신용카드는 잘 발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 카드로 흔히 쓰는 것이 담보형 신용카드(secured credit card)입니다.

구조는 단순합니다. 일정 금액을 보증금으로 예치하면 그 금액만큼이 카드 한도가 됩니다. 예치금이 담보 역할을 하니 은행 입장에서 위험이 없고, 그래서 신용 기록이 없어도 발급됩니다. 보증금은 수십 달러에서 수백 달러 선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카드가 일반 신용카드와 똑같이 신용평가기관에 보고된다는 점입니다. 매달 사용하고 제때 갚으면 그 기록이 그대로 쌓입니다. 카드를 고를 때는 세 개 기관 모두에 보고하는 상품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반년에서 일 년 정도 성실하게 사용하면 일반 카드로 전환되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습니다. 첫 카드를 언제 만드느냐가 이후 일정을 통째로 결정합니다.

가족 카드에 이름을 올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미국에 이미 자리 잡은 배우자나 가족이 있다면 그 사람의 카드에 추가 사용자(authorized user)로 등록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등록되면 그 카드의 거래 이력 일부가 본인 신용 기록에도 반영됩니다.

본인이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고 카드를 실제로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부담이 적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그 카드가 잘 관리되고 있어야 합니다. 연체가 있거나 한도를 꽉 채워 쓰는 카드라면 오히려 부정적인 기록이 함께 넘어옵니다.

가족이 함께 이주한 경우, 취업 신분인 쪽이 먼저 카드를 만들고 나중에 배우자를 추가 사용자로 올리는 순서가 실용적입니다.

점수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기대치를 현실적으로 잡아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첫 신용 상품이 보고되기 시작하고 나서 대략 여섯 달이 지나야 점수가 산출됩니다. 그 전에는 조회해도 점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점수가 생긴 뒤에도 금융기관이 일반 신청자와 동일하게 대우하기까지는 일 년 반에서 이 년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시간표를 알고 나면 정착 초기의 여러 판단이 달라집니다. 도착하고 두 달 뒤에 자동차 할부를 알아봤는데 거절당했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직 점수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SSN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취업 허가가 없는 동반 가족처럼 SSN 발급 대상이 아닌 분들도 방법이 있습니다. 국세청이 발급하는 개인 납세자 식별번호(ITIN)를 받으면, 이 번호로 신용 상품을 신청받아 주는 금융기관이 있습니다.

ITIN은 세금 보고를 위해 만들어진 번호라 체류 신분과 무관하게 신청할 수 있습니다. 모든 카드사가 받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 이주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을 운영하는 곳이라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만 신용 기록을 쌓고 나머지는 손 놓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점수는 무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용 점수를 확인하려고 돈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연방 법에 따라 세 개 신용평가기관의 신용 보고서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공식 창구가 있습니다.

보고서와 점수는 다른 개념입니다. 보고서는 어떤 계좌가 있고 결제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고, 점수는 그것을 숫자로 환산한 값입니다. 정착 초기에는 보고서에 내 계좌가 제대로 올라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카드를 만들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 보고서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발급사에 문의해 보셔야 합니다.

많은 카드사와 은행이 자체 앱에서 점수를 무료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매달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 초기에는 이쪽이 편합니다. 다만 기관마다 산출 방식이 조금씩 달라 숫자가 다르게 나올 수 있으니, 절대값보다 오르는 방향인지를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기록을 쌓는 동안 지켜야 할 것

카드를 만들었다고 저절로 점수가 오르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쓰느냐가 기록의 질을 결정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제일을 한 번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연체 기록은 점수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고 오래 남습니다. 자동이체를 걸어두시면 실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한도를 다 쓰지 않는 것입니다. 한도 대비 사용 비율이 낮게 유지될수록 유리하게 평가됩니다. 한도가 낮은 첫 카드에서는 조금만 써도 비율이 금세 올라가니, 결제일 전에 중간 상환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계좌를 오래 유지하는 것입니다. 신용 기록의 길이도 평가 항목이라, 첫 카드를 나중에 해지하면 그만큼 이력이 짧아집니다. 연회비가 없는 카드라면 쓰지 않더라도 남겨두는 편이 낫습니다.

마지막으로 짧은 기간에 여러 곳에 신청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청할 때마다 조회 기록이 남고, 이것이 반복되면 부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승인 가능성이 높은 곳을 골라 하나씩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 핵심 정리

출발 상태 점수가 낮은 것이 아니라 기록 자체가 없는 상태입니다. 한국의 신용 이력은 넘어오지 않습니다.
첫 상품 담보형 신용카드가 가장 확실합니다. 보증금이 한도가 되고, 세 개 신용평가기관 모두에 보고되는 상품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추가 사용자 잘 관리된 가족 카드에 등록되면 이력 일부가 반영됩니다. 관리가 나쁜 카드라면 역효과가 납니다.
점수 생성 시점 첫 상품이 보고되기 시작하고 약 여섯 달 뒤에 점수가 나옵니다.
정상 대우까지 일반 신청자와 같은 조건을 받기까지 대체로 일 년 반에서 이 년이 걸립니다.
지켜야 할 것 연체 없이 결제하고, 한도를 다 쓰지 않으며, 첫 계좌를 오래 유지하고, 짧은 기간에 여러 곳에 신청하지 않는 것입니다.
확인처 신용 보고서는 연방 법에 따라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카드 상품과 조건은 금융기관마다 다르므로 직접 비교하시기 바랍니다.
노트북으로 미국 신용 보고서를 확인하는 화면

신용 기록은 시간이 재료인 항목입니다. 돈을 더 넣는다고 빨라지지 않고, 성실하게 쓴 개월 수가 쌓여야 올라갑니다. 그래서 정착하고 자리가 잡히면 시작하겠다고 미루는 것이 가장 손해입니다. 자동차를 사거나 집을 구할 계획이 있다면 그 시점에서 역산해 지금 첫 카드를 만드는 편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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