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돔과 푸른 호수 수평선, 윌멧 바하이 사원(Baha'i House of Worship)과 질슨 비치

시카고 도심의 소란함에서 벗어나 북쪽 노스쇼어(North Shore)를 따라 차를 달리다 보면, 윌멧(Wilmette)의 고요한 주택가 너머로 미시간 호수를 등지고 아득하게 솟아오른 순백의 거대한 돔 건축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 이곳을 마주한 2013년 이민 초창기에는 아랍이나 중동 어디선가 본 듯한 이국적인 외관에 놀랐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인류의 평화와 통합을 모토로 삼는 전 세계 단 8개뿐인 바하이 성전 중 북미 대륙을 대표하는 바하이 사원(Baha'i House of Worship)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습니다.

주중 내내 모니터의 인공조명과 복잡한 코드 텍스트 속에 파묻혀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깊은 침묵 속에 내면을 놓아두고 싶어집니다. 햇살이 화창하고 기온이 섭씨 30도 안팎까지 오르는 한여름날, 웅장한 백색 사원과 바로 옆 미시간 호수의 질슨 비치(Gillson Beach)를 함께 묶어 둘러보는 여유로운 산책을 계획해 보았습니다.

7월의 푸른 하늘 아래 솟아 있는 윌멧 바하이 사원(Baha'i House of Worship)의 순백의 돔 전경

하얀 레이스를 짜 올린 듯한 섬세한 아치와 9개의 정원

바하이 사원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들면, 콘크리트와 백색 석영 조각을 섞어 만든 거대한 돔 구조물 전면에 섬세하고 복잡한 조각 문양이 정교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하얀 레이스 장식을 하늘로 짜 올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기하학적입니다. 건축물 외벽에는 세계 주요 종교들의 상징 문양들이 함께 각인되어 있는데,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모든 인간이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바하이 사상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사방 9개의 방향으로 대칭을 이루는 9개의 입구와 장미 정원, 그리고 아담한 분수 연못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장미꽃 향기가 잔잔하게 감도는 흙길을 걸으며 연못 수면에 비친 하얀 돔의 잔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을 채우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원 내부로 들어서면 조용히 묵상을 할 수 있는 높고 웅장한 예배당 공간이 펼쳐집니다. 특정 구원자 상이나 화려한 장식 없이 조용한 침묵과 높다란 돔 천장으로 여과되어 떨어지는 부드러운 햇살만이 가득합니다. 그 공간에 가만히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 10여 분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순간이 되어 줍니다.

바하이 사원을 둘러싼 9개의 대칭 정원과 분수 연못 풍경

사원 산책 후 걸어서 5분, 질슨 비치(Gillson Beach)의 푸른 수평선

바하이 사원의 정원 산책을 마친 뒤, 동쪽으로 길을 건너 5분만 걸어가면 시카고 북부 노스쇼어 주민들이 즐겨 찾는 해변 공간인 질슨 비치(Gillson Beach)로 연결됩니다. 붐비는 시카고 도심의 노스 애비뉴 비치와 달리, 이곳 윌멧의 질슨 비치는 탁 트인 모래사장과 함께 드넓게 펼쳐진 미시간 호수의 수평선이 맞아줍니다.

시원한 호수바람이 모래사장 위로 불어오고, 호숫가를 따라 가볍게 조깅을 하거나 피크닉 매트를 펴고 책을 읽는 로컬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름 한낮에는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 단위 방문객도 꽤 많은 편입니다. 질슨 비치의 트레일을 따라 호수 바위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면, 아득히 멀리 시카고 다운타운의 마천루 스카이라인이 수평선 위에 떠 있는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호숫가 산책 후 배가 고파지거나 목이 마를 때는 사원에서 차로 약 3분 거리에 위치한 윌멧 다운타운 역사 지구(Historic Downtown Wilmette)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아담한 규모라, 굳이 차를 다시 옮겨 탈 필요 없이 도보로 이어서 다닐 수 있습니다. 아담한 기차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 소박한 동네에는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 사이에 로컬 카페와 유기농 베이커리들이 숨어 있습니다.

완공까지 40년 넘게 걸린 건물입니다

지금 보이는 이 사원은 1912년 초석이 놓인 뒤로도 실제 건물 공사는 1920년에야 시작됐고,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으로 자금과 자재 조달이 여러 번 중단되면서 최종 완공은 1953년에야 이뤄졌습니다. 초석부터 따지면 40년이 넘게 걸린 셈입니다. 외벽을 감싼 흰색 석영 콘크리트 패널은 버지니아주의 한 공방에서 특수 제작한 뒤 기차로 실어와 강철 골조에 하나씩 붙인 것으로, 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반짝이도록 설계됐습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단순히 예쁜 건물을 구경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여름 주말은 방문객이 몰려 조용함이 덜합니다

사원과 정원이 워낙 잘 알려진 노스쇼어 명소라, 날씨 좋은 여름 주말 오후에는 관광버스로 단체 방문객이 몰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때는 정원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예배당 내부도 평소보다 훨씬 붐빕니다. 조용한 분위기를 기대하고 간다면 평일 오전이나 이른 아침 시간대를 노리는 편이 훨씬 만족스럽습니다. 사원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을 꼭 남기고 싶다면 외관과 정원 위주로 계획하는 편이 좋습니다.

윌멧 질슨 비치(Gillson Beach)에서 바라본 미시간 호수의 드넓은 수평선

📍 윌멧 바하이 사원 & 질슨 비치 현지 실전 가이드

  • 입장료 및 주차비 완전 무료: 바하이 사원은 1년 내내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사원 전용 무료 주차장이 바로 옆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질슨 비치 파크 역시 도보 접근은 무료입니다.
  • 내부 드레스 코드 및 정숙 유지: 사원 내부 예배당은 종교나 신념과 관계없이 누구나 입장할 수 있으나, 정숙을 유지해야 하며 내부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됩니다. (야외 정원 및 건물 외관 사진 촬영은 자유롭게 가능합니다.)
  • 대중교통 접근성: 시카고 도심에서 출발할 경우 CTA Purple Line 전철의 종점인 Linden 역에서 하차하여 북쪽으로 도보 약 7분만 걸으면 사원 초입에 도달하므로 대중교통 여행으로도 무척 편리합니다.

📍 상세 위치 및 방문 요약

장소명 바하이 성전 (Baha'i House of Worship) & 질슨 비치 (Gillson Beach)
주소 100 Linden Ave, Wilmette, IL 60091
운영시간 정원: 매일 06:00 AM - 08:00 PM / 성전 내부: 매일 10:00 AM - 05:00 PM
공식 링크 bahai.us/bahai-temple

다양성을 존중하며 하나의 조화로 복잡한 건축물을 일구어낸 사원의 9개 문처럼, 이번 주말 백색 돔의 고요함과 호숫가 바람이 건네는 여유 속으로 짧은 산책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40년 넘게 걸려 완성된 건물이라는 걸 알고 다시 보면, 그 하얀 외벽이 한층 더 다르게 다가옵니다.

댓글